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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실천신학회의 목적


한국실천신학회는 전국 각 신학대학 및 각 신학교의 실천신학 교수 및 실천신학을 전공한 목회자들이 함께 모여 순수한 학문적인 연구와 인격적인 친교를 도모하며, 실천신학의 학술정보를 교류함과 동시에 교회와 지역사회 및 국내외 신학교육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한국실천신학회의 역사


최초 한국실천신학회의 태동은 1920년 이 땅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면서 외국선교사의 서투른 번역과 통역에 의해서 설교와 목회가 시작되면서 교회가 세워지고 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교에서 가르친 곽안련(Allen Clark) 선교사의 「설교학」,「목회학」출간으로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 후 한국교회가 성장하고 교단별로 신학교육기관이 창설되어 신학교 교장이나 목회에 성공하신 목회자와 교단 지도자들이 「교회헌법」과 「설교학」, 「목회학」 등을 가르치면서 부터 한국실천신학이 시작되게 된 것이다.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교회현장과 실천신학을 토론하는 그룹이 생겼고, 1960년대 후반에 실천신학자들이 모여 매년 지방순회강연을 시작으로 실천신학자들의 건재를 전국교회에 알리게 되었고, 어떻게 하면 목회를 잘할 수 있을까하는 것뿐만 아니라 대사회적인 역할을 담당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1970년대에는 실천신학자들이 모여 랄프 G. 턴불 「실천신학사전」(전3권)과 「예배학원론」을 번역하였다. 그리고 매년 2회 친교와 학술논문을 발표하여 오다가 1973년 공동학화라는 명목으로 통합학회로서 ‘한국기독교학회’의 멤버가 된 것이다. 그 후 1970년대 후반에는 다양한 실천신학의 분야를 전공한 학자들이 나오고, 특히 목회자들의 ‘목회학박사’(D. Min.)학위를 받은 지도자들이 나오게 되었다.

1980년대는 한국실천신학회의 기반구축이 되어 실천신학의 저서들과 논문들이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학문적 분립요구가 생기게 되어 1991년에 ‘선교학회’, 1997년에 ‘목회상담학회’가 분립되었고, 1993년에는 ‘교회음악학회’, ‘여성신학회’, ‘문화신학회’가 새로 태동하여 독자학회로 출발한 것이다. 현재 실천신학회내에는 ‘설교학’과 ‘예배학’, ‘목회학’을 전공한 학자들이 있고, 분립한 학회 내에서도 이중 삼중으로 겸하는 회원들이 있어 실천신학의 통전성을 공감하는 학자들이 많아 졌다.

학술지로서는 1997년 창간호를 시작으로 현재 제15호를 발간하였고, 특히 2007년 ‘한국학술진흥재단 등재후보지’로 선정되었으며, 매년 4회(2월, 5월, 9월, 11월(외국어) 발행하기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학술대회(세미나)는 1993년 이후 현재 제28회째이고, 년4회(2월, 6월, 9월, 10월) 모이고 있으며, 2004년 4월 14일에는 ‘사단법인 한국학술단체연합회’에 가입인증을 받게 되었다. 역대 총회는 초대 김소영을 비롯하여 박근원, 천병욱, 정장복, 김외식, 박은규, 오성춘, 문성모, 백상열에 이어 현재 제14대 위형윤 회장에 이르게 되었다.

앞으로 한국실천신학회는 복음주의 실천신학회와의 연대 연구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학회의 통전적 연구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연구 분야를 넓혔으며, 또한 공동학술연구 과제로 ‘한국실천신학 표준용어사전 편찬위원회’, ‘한국10대 성장교회 분석시리즈 발간위원회’, ‘한국세시풍속과 한국적 교회력 연구위원회’, ‘학회발전기금위원회’, ‘국제관계진흥위원회’, ‘실천신학 각종 자격인증제 위원회(상담사, 장례사, 설교사, 찬양사 등)’, ‘한국실천신학자 수필집과 설교집 발간 위원회’를 발족하게 되었다.


 

한국실천신학회 약사


I. 학회 약사

‘한국실천신학회’는 1973년에 공동학회라는 통합학회의 성격으로 출발한 ‘한국기독교학회’의 창립 학회 가운데 하나였다. 다른 학회들이 그러하듯이 실천신학회의 역사도 더 소급해 올라간다. 기록 이전의 역사 취합을 집단기억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다른 회원들의 기억을 입력해서 수정 보완할 수 있는 틀거리로 하나의 초안을 제공하고자 한다.

1. 한국교회와 실천신학

한국실천사학회의 전사(前史)를 파악한다는 것은 창공에 뜬 구름을 잡는 이야기나 비슷하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한국 땅에 심어져서 싹이 트고 나무로 자라 오늘날 많은 열매를 맺게 되기까지 그런 이름은 없었다 해도 실천신학의 방편을 통해서였다. 외국 선교사들이 와서 설교는 서투른 번역을 통해서 했다고 하자. 상황적인 목회기도는 지 교회에서 신앙의 연조가 가장 높은 분이 도맡아서 하게 되었다. 이 관례가 지금까지도 전승되어 매 주일예배 때엔 반드시 장로의 기도가 있어야 하는 한국교회의 전통(?)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한국 초창기 교회의 현실에서 실천신학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교회의 생명력이 싹트게 되기까지 무엇이 크게 작용했을까? 우리 민족의 종교적인 열심, 성령의 역사, 성서중심의 신앙생활 속에서 얻어지는 지혜, 그리고 한번보고도 그것을 모방해 낼 줄 아는 초기 교회의 지도력 등등이 그 당시 교회를 일구어온 저력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이 땅의 교회에 최초로 실천신학적인 안내가 소개된 것은 1920년대 중반 평양 신학교에서 설교학과 목회학을 가르친 곽안련(Allen Clark) 선교사의 노트였다. 곧 바로「설교학」,「목회학」이라는 책으로 출간되어 오랫동안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실천신학 지침서가 되었던 것이다. 수준은 고등성경학교의 교재 수준으로 신학이라는 것은 내용으로 담겨져 있지 않았고, 그저 방법 (know-how)들을 제시한 것이었다. 20세기 초 북미주의 실천신학이 그런 것이었다. 설교가 주종을 이루었고, 그 밖의 목사의 할 일을 ‘목회학’에 모두 포함시켰다. 최근까지도 한국교회의 목사되는 과정의 시험과목도 설교학과 목회학으로 구분해왔을 정도이다.

한국교회가 성장하고 교단별로 신학교육기관이 창설되어서도 당분간은 곽안련의 책들이 교재 구실을 하였다.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는 욕구가 분출되어서 여러 형태의「목사필휴」와 같은 목회 핸드북이 소개되었는데 그 출처도 하나는 일본 그리스도교회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 쪽 문서의 번안 자료였다. 실천신학 교수가 없었던 상황에서 대부분은 신학교 교장들이 이런 교과목을 담당하였고 또 그런 자료들도 주선, 출간하였다. 그동안 현장 목회에 성공하신 분들의 목회경험과 교단 지도자들의 교회헌법 강좌 등등이 추가되게 되었다. 한국교회 실천신학 형성의 이런 정도의 수확이 민족해방과 6.25 동란 직후까지의 현실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즈음까지 실천신학에 관계된 학과목을 가르쳤던 분들, 그리고 관련된 책자를 내놓았던 분들은 이런 분들이었다. 김재준, 김정준, 홍현설, 마경일, 백리언, 김득룡, 김규당, 임택진, 박석규.... 본격적인 한국교회 실천신학 ‘발전’의 초석을 놓았던 분들이다. 양승달, 박병진, 김태묵 같은 이들도 발자국을 남겼고 그 밖의 수많은 무명 ‘학자’들의 밑거름도 좀더 발굴해 가야 할 것이다.

2. 실천신학회의 태동

한국교회에서 실천신학회의 태동도 학문으로서의 실천신학을 토론하는 방식으로 출발하지 못했다.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교회현장과 신학교육 기관들이 정돈되면서 실천신학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아직도 “어떻게 하면‘ 목회를 잘 할 수 있을 것인가에 관심의 초점은 머물러 있었다. 지금까지의 경우처럼 각 교단이나 신학교의 가내수공업적인 상품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 현장 교회의 요구가 표면에 두드러져 나왔다.

이런 상황의 요청에 응하기 위해 1960년대 후반에 한국교회 최초의 실천신학 관련 교수들이 뜻을 모아서 지방 순회강연을 시작하였다. 한번 뿐만 아니라 여러 차례 이 지방순회가 지속된 것으로 보아서 학자들의 보람도 있었고 지방교회의 목회자들에게도 퍽 유익했던 것이었다. 이 실천신학 운동이라고 부름직한 활동에 동참하신 분으로서 김소영 (영남신), 홍현설 (감신), 안희국 (한신), 허경삼 (서울신), 신현철 (삼육신) 교수 등이 주역을 하였다. 순회강연 장소로는 서울을 포함해서 부산, 대구, 광주, 인천, 대전, 청주, 춘천 등지를 돌아다녔다. 명실 공히 한국교회 실천신학의 항공모함 구실을 했던 중요한 사건이었다.

1970년대에 이르러 한국교회 실천신학의 제1세대들이 등장하였다. 위의 교수들을 포함해 정용섭 (중앙신), 박근원 (한신), 염필형 (감신), 이기춘 (감신), 천병욱 (서울신) 등등이 각기 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여기에 합류하게 되었다. 한동안 역시 지방순회 강연을 함께 하였고 학회로서의 역학관계가 조성되기에 이르렀다. 랄프 G. 턴불,「실천신학사전」(전3권)을 1권은 김소영, 박근원, 황성규, 2권은 김소영, 박근원, 차풍로, 3권은 박근원, 저용섭, 허경삼이 번역하였다. 그리고「예배학 원론」을 함께 번역해 출판하였다. 1973년 공동학회의 차터 멤버로 참여한 후부터 한해 두 번 정도의 친교와 학술논문 발표의 계기가 있었고 새로운 회원이 들어올적 마다 환영하는 축제의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이때 외국에서 돌아온 회원들의 주요활동은 연구발표와 번역서를 출판하는 일이었다. 당장 교재가 없어서 그런 현실의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서였다. 이때 출판된 회원들의 번역서를 조사해 열거한다면 놀라운 발전을 눈여겨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얼마동안 학회로서 조직적인 활동기록은 많지 않지만 회원각자의 활동 기록을 종합, 정리 할 수 있다면 엄청난 일을 했던 시기였다.

이 실천신학회의 태동기에 학회의 육성 내지 그 틀을 갖추게 되기까지 김소영의 기여를 잊을 수가 없다. 학교를 떠나 교회기관의 중요한 지도력을 감당하면서도 학회를 위한 불심양면의 지원이 결정적으로 우리 학회의 오늘을 있게 만들었다. 이와 아울러 이 태동기에 실천신학의 학문적 안내에는 한국에서는 최초로 이 분야의 학위를 받고 돌아온 박근원의 공헌도 있었다.


3. 실천신학회의 기반구축

한국실천신학회가 명실공히 학회로서 여건을 갖추게 된 것은 1970년 후반부터였다. 그 사이 학회의 활성화를 위해서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근간에 외국에서 ‘목회학 박사’(D. Min) 학위를 받은 교회 지도자들로까지 회원을 확대하려는 시도도 했으나 결과는 그렇게 성공적이지 못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하였다. 제2세대 실천신학자들의 눈부신 등장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정희 (침신), 정장복 (장신), 오성춘 (장신), 김외식 (감신), 최희범 (서울신), 정태기 (한신), 박은규 (목원) 등등을 위시해서 이젠 신학교육 기관마다 그리고 실천신학의 내부 각론의 전공분야까지 골고루 충원된 셈이다. 1980년대가 한국실천신학회의 기반구축이 가능해진 시기였다. 한국 개신교의 한 세기에 즈음해 학문적인 내실을 자랑하게 되었다. 이 때에 출간된 우리 실천신학자들의 저서들과 논문을 여기에 모두 수록할 필요는 없다. 학회로서는 아주 풍요로운 시기였다. 이 시기의 학회 활동상황은 역대회장 (김소영, 박근원, 천병욱, 정장복, 김의식, 박은규, 오성춘 등)의 기억과 기록을 정리하여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4. 실천신학회의 구조변화

실천신학의 학문적인 내부구조에 관해서는 각자의 전통과 또 학문적인 선 자리들이 달라서 좀처럼 논의의 대상이 되어오지 못했다. 실천신학이라고 해도 신학 전체와의 관련성에서 자리매김이 되어져야 하므로 하나의 독자적인 구조를 가지는데는 역사적으로 논란이 많았다.
흔히 목회자가 감당해야 하는 내용의 신학과 방법을 오랜동안 ‘목회신학’이라고 불러왔다. 이것을 포함해서 ‘교회의 실천’을 통털어 ‘실천신학’으로 부르기도 했는데 그것도 나라와 교회전통에 따라서 다양하다. 독일을 위시한 유럽교회에서는 지금까지 교육학을 실천신학의 분야로 간주하는 데가 많고, 영국과 스코트랜드 교회에서는 ‘선교학’과 ‘윤리학’도 실천신학으로 생각한다. 전체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실천으로서의 ’윤리학‘과 ’교회교육학‘은 북미주 교회의 경향에 따라서 우리 신학계에서는 아예 실천신학에서는 독립적인 신학분야로 간주되어왔다. 한국기독교학회에서도 선교학을 제외하고는 처음부터 독자적으로 학회를 구성해서 참여해 오고 있다.

1990년대에 이르러 우리 실천신학회 안에도 이런 학문 내부적 구조의 역학관계가 논의되기 시작하여 학회의 ‘분립’요구가 생기게 되었다. 1991년에 ‘선교신학회’가 우리 실천신학회에서 분립하였고, 1993년에는 ‘교회음악학회’가 새로 태동하였다. 본래는 실천신학회에 가입의사가 있었으나 당시 실천신학회의 회장겸 한국기독교학회의 회장이었던 박근원과 임원들의 협의를 거쳐 처음부터 새로운 학회로 가입시키기로 합의한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실천신학에 먼저 들어와서 예배와 설교 분야와의 신학적인 대화라도 발전시킨 후에 분립했어야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1997년에는 ‘목회상담학회’가 따로 분립하였다. 그러나 ‘실천신학회’의 테두리 안에서 오랫동안 함께 학문적인 대화를 해왔기 때문에 지금도 이중 회원 자격으로 학문적인 교류와 지원을 계속하는 이들도 많이 있다.

사실 우리 한국기독교학회에 속한 ‘여성신학회’나 ‘문화신학회’는 독자적인 학회로 가입은 되어 있지만 그 성격상 다른 전공을 겸한 이중 회원자격을 지탱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아닌가 생각한다. 하물며 실천신학에서 분립한 학회들 사이에도 이중, 삼중의 회원의 가능성과 역동적인 유대는 계속 강화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실천신학회의 급격한 구조변화의 와중에서 그래도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각론적인 전공분야는 예배, 설교, 교회공동체, 신앙영성 등 오랜 전통의 목회신학의 틀에 해당하는 과목의 전공자들이다. 이 분야의 학자들도 더욱 충원되어서 갈라져 나간 회원의 숫자 이상으로 내실을 다져가고 있는 것이 새 세기를 맞는 실천신학회의 현실이다. 1997년 9월 30일 가을「신학과 실천」창간호를 발간하여 2003년 제6호를 출판하여 독자적인 학술지로서 면모를 갖추어 발전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5. 미래 과제와 전망

한국실천신학회는 이제 새 세기를 맞아 자체의 학문적인 발전은 물론 한국교회 전반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세계화의 물결에 걸맞게 세계교회와 학문적인 교류를 하고 특히 실천신학적인 정보 (IT)의 나눔에도 기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첫째, 학회의 학문적인 내실에 진력했으면 한다. 각자의 전공분야도 심화할 뿐만 아니라 인접 실천분야와의 대화도 지금까지보다는 과감하게 발전시켰으면 한다. ‘실천’적 분야끼리의 학문적이고 방법론적인 교류를 진작시켜 실천신학의 학문적 공동 기반 구축 같은 것을 더욱 강화해야 하겠다. 분야별 각론도 중요하지만 실천분야의 공동 기반 구축을 위한 ‘신학실천’의 새로운 지반도 북돋우어 가야 할 것이다.

둘째, 우리 학회의 태동기에는 학문과 현장의 만남에서 그 원동력을 체험한 바 있는데 최근에는 학자들 간의 학술적 토론과 저서의 출판에 역점을 두어온 것이 아닌가 반성한다. 물론 이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학문은 현장을 전제로 한 것이기에 이 현장과의 대화 기회를 확장해 가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셋째, 모든 신학분야가 다 그렇지만, 이젠 세계적이면서도 동시에 지역문화의 표현을 담은 학문으로서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시대에 와있다. 우리의 자매학회인 선교신학회나 목회상담학회는 이제 국제적인 유대를 모색하고 있는데, 이 실천신학의 ‘모’ 학회도 그런 국제적인유대의 길을 찾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국제실천신학회’(International Academy of Practical Theology)와 관계를 맺고 있는 회원도 있으나 한 국가 단위의 학회로서 우리 한국실천신학회와도 공식적인 연계노력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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